1. 정체성

나는 “나르시시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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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의 “샘”

“나”는 이미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공기처럼 인식으로 부터 은폐되어 있다.

나의 인식은 하나의 장애를 통해 발견된다.

불편함, 낯섦 속에서 인식되는 “나”의 있음

그것은 세계의 해석을 통한 “나”의 이미 있음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 필요한 상황을 만든다.

“이것은 무엇인가?”

이 낯선 것을 마주한 나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석)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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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 속에서 “나”라는 인식은 숨겨집니다.

집중을 방해 받는 순간,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 내가 잘하고 있나? 나는 지금 뭘하고 있지?라는 생각과 함께 몰입은 깨어지고 “나”가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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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제3의 눈, 나를 바라보는 눈(응시)의 감각을 통해 캐릭터의 “자아”를 구성하고 내면화합니다.

희곡-언어가 구성하는 세계 속 자리, 상대와의 관계 속에서 상상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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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시

무언가를 몰래 바라보는 나를 바라보는 “눈”

우리는 스스로의 행동과 생각을 바라보는 제3의 눈으로 부터 “나”를 본다.

그것은 “대자”이자 외부에 만들어진 “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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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나를 바라보는 나”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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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개의 눈이 있을까?

내가 나를 바라보는

엄마가 나를, 그리고 엄마를 바라보는

스마트폰이 나를, 엄마를,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스마트폰을 통해 이 모든 눈을

그리고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자신을…..

그리고….

….

무한의 눈들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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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단계와 미러링

생물학적 신체는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항상성 유지를 위해 반응합니다.

그것은 쾌락과 불쾌 이전 신체의 활성화와 불활성화, 메타볼리즘의 지속과 단절의 문제일 뿐입니다.

쾌와 불쾌는 최초의 타자와의 보여짐, 불려짐, 만져짐, 내어줌.. 속에서 하나의 신체적 기억(지식)이 됩니다.

그리고 그 타자의 말이 들려옵니다.

“이뻐라, 불편해, 배고프지….”

그 말은 보여짐을 바라봄으로, 만져짐을 만짐으로, 불려짐을 부름으로, 내어줌을 주어짐으로 키워가지요. 최초의 상상적 상호 관계(주체)가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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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p 정체성은 존재보다 성장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고, 성장은 탄생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 타인이 다양한 의미 층위들로 장식하는 우리의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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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니 클라인과 대상관계 관점

*생후 첫 몇 개월의 영아는 어머니의 가슴을 통해 세상을 경험한다. 이때 가슴은 단지 젖을 주는 신체기관이 아니라, 아이에게는 욕망의 대상이며 동시에 생존과 안정의 상징이 된다.

영아는 젖을 제공받을 때는 그것을 “착한 가슴”으로 경험하고, 결핍되거나 거부당할 때는 “나쁜 가슴”으로 인식하는,
아이의 주관적인 감정 상태에 따라 외부 대상을 분열시켜 구성한 내적 환상을 만든다.*

‘편집-분열 자리(paranoid-schizoid position)’

아이는 자신의 불안과 좌절을 외부로 투사하고, 만족과 불안이라는 정서 상태를 극단적으로 나누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별개의 대상으로 처리한다. 이 과정에서 나쁜 감정은 외부 대상에게 투사되며, ‘나쁜 가슴’이라는 공격적 이미지가 형성된다. 동시에 아이는 ‘착한 가슴’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보호받고자 한다. 이러한 분열은 영아기 방어기제로서 기능하지만, 지나치게 고착되면 성인기의 정서적 불안정과 관계의 이분법적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후 분열된 대상을 점차 하나의 동일한 대상으로 통합해 나아가는 과정을 살아간다.

‘우울 자리(depressive position)’ 아이는 ‘착한 가슴’과 ‘나쁜 가슴’이 사실은 동일한 어머니의 두 측면이라는 것을 수용하고 그 대상에 대한 공격성에 죄책감을 느끼며, 수선하려는 욕망을 품는다.* 감정의 복합성, 타자의 모순성, 관계의 윤리적 차원이 발생하게 된다.


자크 라캉의 상상적 자아 (거울단계) 관점

생후 약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의 유아는 거울 속에서 자기 자신의 이미지를 처음으로 인식한다 아이는 자신이 보는 ‘거울 속의 나’와 동일시하면서, 그것을 자기 자신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적 환희를 경험한다.
"기쁨에 찬 가정(jubilant assumption)" 그 이미지 - 통일되고 안정되어 보이는 존재 - 는 실제의 아이, 즉 아직 걷지도 못하고 통제되지 않은 몸을 지닌 존재와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거울단계는 자아(ego)가 형성되는 동시에, 그것이 근본적으로 외부에서 온 이미지에 대한 동일시, 즉 기만의 구조임을 드러낸다.

아이에게 거울은 단순한 반사 장치가 아니라, 타자의 시선과 언어로 진입하기 위한 통로이다.

거울 속 이미지로부터 아이는 “그게 나야!”라고 말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자아가 타자적 이미지에 의해 구성된다.

내가 말하는 ‘나’는 결코 순수한 내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언어와 사회적 기표 속에서만 말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동일시 과정은 단순한 자기 사랑으로 끝나지 않는다.

거울단계의 깊은 내적 긴장과 공격성

아이는 거울 속의 완전한 이미지와 현실의 자신(분절되고 미숙한 신체) 사이의 간극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기 때문에 곧 불안과 좌절, 나아가 타자에 대한 공격성과 자기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

거울단계는 자아 형성의 기점이자, 동시에 분열과 고통, 그리고 타자의 응시 속에서 구성되는 주체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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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사랑과 증오, 그리고 나르시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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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고 불안정한 우울한 자리에서 우리는 “나”를 인식할 수 있는 하나의 모범 (이미지)를 찾게 된다.